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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s Movies

살인자만 있고 범인은 없다???


1997년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에 갔던 고 조중필씨는

두명의 미국 한인에 의해 칼로 무참히 살해당했다.



(1) 발생일시 : 1997년 4월 3일 밤 11시경

(2) 발생장소 :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버거킹 햄버거 가게 화장실

(3) 피해자 : 조중필(남, 당시 22세)

(4) 가해자 : 에드워드 케이 리 (남, 1977년생), 아더 제이 패터슨 (남, 1977년생)

(5) 재판 결과: 에드워드 케이 리 무혐의 처리 아더 제이 패터슨 미국으로 도주 현재 다른 폭력 사건으로 미국에서 복역중




위에 간략히 정리된 사건은 이번에 영화로 개봉되는 ‘이태원 살인사건’(감독 홍기선·제공 스폰지이엔티)의 모티브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명백한 용의자가 두명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1997년 4월 3일 밤 11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버거킹 햄버거가게 화장실에서 조중필씨가 가슴과 목 등 9군데를 칼로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제보를 받고 수사에 들어간 CID(미육군범죄수사대)는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미군속 아들 패터슨을 검거해 조사를 벌였다.

당시 사건 현장엔 패터슨과 재미교포 에드워드 단 둘만이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군측은 패터슨과 참고인들을 불러 조사한 결과 패터슨이 미국내 갱단인 노르테14의 단원이고, 결정적으로 페터슨으로부터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들었다는 참고인 진술 등을 토대로 패터슨을 살인범으로 지목하고 신병을 한국측에 넘겼다.

사건 발생 몇일 후 에드워드도 한국경찰에 자수하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결과 에드워드가 범인이라며 미군측의 주장을 뒤집었다.

수사 당시 이들은 사건 현장에 그들 두명만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서로 상대가 피해자를 살해하였고, 자신은 우연히 살해 현장을 목격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전가했다.

"이제 심리가 다 끝났습니다. 판사가 아닌 인간으로서 두 가지만 묻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피고인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정말 솔직하게 대답해주었으면 합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범인인 것은 맞습니까?"

이부장판사의 애절한 호소에 방청객들의 눈길이 피고인석으로 쏠렸다.

두 사람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다.

"리에게 먼저 묻겠습니다. 중필씨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제 옆에 앉아 있는 아더 패터슨입니다"

"패터슨에게 묻겠습니다. 중필씨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제 옆에 앉아 있는 리입니다"

방청석 곳곳에서 한숨소리가 들렸다.

당시 이들 및 관련 참고인들의 진술에 의하면, 이들은 패터슨이 소지하고 있던 잭나이프를 가지고 놀다가 “나가서 아무나 찔러봐라”는 등 살인을 충동질하는 식의 이야기를 나누다 누군가 “내가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마침 화장실에 가던 조중필씨를 따라 들어가 소지하고 있던 칼로 아무런 이유없이 조씨를 마구 찔러 현장에서 숨지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을 죽인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버젓이 화장실에서 나갔고, 나오면서 피보기 게임을 하였다.

재미로 사람을 죽였다는 등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서울지검 박재오 검사는 "사건 초기에는 아무런 심증이 없었다. 그러나 검찰 신문과정과 법의학 소견, 거짓말 탐지기 결과로 리가 범인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우선 칼의 행방에 관해서 제이슨은 "마지막으로 칼을 리가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바지 주머니에 넣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또 랜디도 "리가 칼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만진 뒤 패터슨에게 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이슨은 또 어떤 남자가 화장실에 들어가자 리가 패터슨에게 "화장실에서 뭔가 보여주겠다 따라 와라"고 말하면서 둘이서 화장실로 가는 것을 보았다며 "I am going to show you somthing cool, come in the bathroom with me"라는 리의 말을 기록에 썼다.

그러나 같은날 리와의 대질신문에서는 "분명히 그 말을 들었으나 누가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랜디와 데니는 "리가 먼저 화장실에 들어갔고 리가 먼저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한편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사건 다음날인 4일 현장을 방문하고 중필씨의 사체를 부검했다.

그의 소견에 따르면, 칼에 찔린 목의 상처가 위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고, 피해자가 방어흔(가격을 당한 피해자가 이를 막다가 생기는 상처)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상대는 피해자보다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 아주 짧은 시간에 공격이 이루어져 범인은 정신이상자거나 환각상태에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내용이다.

리는 키가 180cm 몸무게가 105kg가량이고, 패터슨은 키가 172cm에 몸무게 63kg. 중필씨의 키는 176㎝였다.

검찰은 4월23일 리와 패터슨에 대한 거짓말탐지기조사를 실시했다.

검찰은 리에게 "화장실에서 조중필을 칼로 찌른 사람이 당신입니까?"라고 묻고 한국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패터슨에게는 같은 질문을 영어로 했다.

둘다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24일 결과가 나왔다. 리는 질문에 대답하는 부분에서 심장과 호흡 등에 현저한 반응을 나타내 '거짓'이며, 패터슨은 모두 '참'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한편 검찰은 리를 상대로 도핑테스트를 했지만 음성반응이 나왔다.

패터슨은 CID에 자수한 후 역시 테스트를 받았으나 음성반응이 나왔다.

이들이 서로 범행을 부인하는데다, 미측 조사시 패터슨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들었다는 결정적 진술을 한 증인 랜디가 검찰 조사에서는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며 진술을 번복하는 등 진술에서의 신빙성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검찰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결과와 부검의 소견 등을 결정적 증거로 하여 1997년 4월 26일 리를 살인죄로, 공범인 패터슨은 단지 흉기 소지, 증거 인멸에 따른 폭력죄로 기소했다.

1997년 10월 2일 1심 재판부는 에드워드 케이 리에 대해 무기징역을, 아더 제이 패터슨에겐 징역 장기 1년 6월, 단기 1년을 선고하였다.

이에 이들 모두 항소하여 1998년 1월 26일 항소심 재판에서 리는 징역 20년, 패터슨은 징역 장기 1년 6월, 단기 1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후 패터슨는 항소를 포기하고 복역하던 중 1998년 8.15 특사로 사면되었고, 리는 대법원에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대법원까지 간 끝에 1999년 9월 3일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사자들도 인정하듯 둘 중의 한명은 분명 범인임에도 불구하고, 범인이 누군지조차 가려내지 못하고 모두 자유로운 상태가 된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은, 초동수사 당시 현장이 보존되어 있지 못하였고, 통역문제 등으로 원활한 수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데다 패터슨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들었다는 패터슨의 친구 랜디 등 중요 참고인들에 대해 법원이 증인으로 소환하려 하여도 이들이 대개 미군속 자녀 등 SOFA 대상자라 미측의 협조없이 마음대로 소환할 수 없다보니 사건의 실체를 가리기가 쉽지 않고, 무엇보다 검찰이 기소 당시 이 둘을 살인죄에 대해 공범으로 기소했어야 함에도 단독 범행으로 결론내리는 등 수사 단계에서부터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유족들은 다시 패터슨을 유력한 살해용의자로 지목하고 패터슨의 신병을 확보하여 즉각 재수사할 것을 요구했다.

이미 유족들은 1998년 9월 24일 서울고등법원이 대법원으로부터 파기 환송된 사건에 대하여 에드워드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패터슨을 살인죄로 고소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검찰측에서는 유족들의 계속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신병확보조차 못하고 있다가 1999년 12월, 패터슨이 검찰에서 출국금지 연장을 하지 않은 틈을 타 8월 24일 이미 미국으로 출국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현재도 불평등이라고 알려진 한미간
                    SOFA에 대한 개정 요구 운동이 거칠게 일어났었다.



관련하여 서울지검은 2000년 11월과 2002년 1월경 두 차례에 걸쳐 미 법무부에 패터슨의 살인 혐의에 대해 피의자 패터슨과 관련 참고인들에 대해 미국에서 조사할 수 있도록 사법 공조 요청서를 보냈다.

그러나 미측으로부터 아무런 답변도 얻지 못한 채 검찰은 2002년 10월 패터슨에 대해 기소 중지 결정을 내렸다.

살인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15년으로, 기간 내에 패터슨의 신병을 확보하여 살인 혐의를 밝혀낸다면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주한데다 한미 사법공조의 실효성이 없다보니 사실상 수사가 종결된 상태다.

이로써 사건도 더 이상 수사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이에 유족들은 1999년 12월 24일 담당검사를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했다.

한편, 2000년 8월 에드워드와 패터슨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서울지방법원 2000가합59932)을 제기하고, 같은 해 10월 국가기관인 검찰이 자신의 임무를 게을리한 결과 살인자에 대한 수사와 응분의 처벌을 받지 못하게 된 책임을 물어 국가를 상대로 1억원의 국가배상을 신청하는 동시에 손해배상 소송(서울지방법원 2001가합3899)을 청구했다.

그러나 담당검사에 대한 고소건은 무혐의 결정 통고를 받았고, 국가배상 신청은 2001년 8월 30일 '적정한 판단 아래 이뤄졌다면 과실이 아니다'는 이유로 신청이 기각됐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역시 검찰측에서 출국금지 연장을 제때에 하지않은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피의자가 출국했다 하더라도 국제 형사 사법공조, 범죄인 인도조약 등에 근거, 수사와 신병 인도가 가능하므로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2002년 6월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유족들은 항소했으나 2003년 5월, 항소심마저 기각되었다.

이에 유족들은 대법원에 상고, 2005년 9월 9일 고 조중필씨 살해 용의자 패터슨에 대해 검찰이 제때 출국정지기간 연장 신청을 하지 않아 용의자가 미국으로 도주하여 유족들에게 정신적 고통이 있다고 인정, 국가가 배상하여야 한다는 판결(대법원 2003 다 29517)을 받았다.

한편, 에드워드와 패터슨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의 경우 2003년 5월 13일 1심에서 에드워드와 패터슨,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은 연대하여 2억여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일부 승소 판결을 받긴 했으나 미국 현지의 소재 파악이 어려워 판결이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때 법원 판결문은 한편의 코메디 영화 같았다.

판결문에서 “비록 에드워드 리가 형사 법정에서 조씨를 살해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적어도 이들 둘이 공모하거나 두 사람 중 한명이 다른 사람의 살인을 교사 또는 방조해 별다른 이유없이 조씨를 살해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결국 둘 중 한명은 확실하지만 아무도 범인으로 잡지못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번에 개봉하는 이태원 살인사건 포스터 상단의 "뭔가 보여줄께 따라와봐"라는 문구는
살해직전 리가 패터슨에게 했던 말이라고 재이슨이 진술했던 내용이다.